[인권문헌읽기] 산업안전보건 서울선언(Seoul Declaration on Safety and Health at Work, 2008)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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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이다 올바른 식습관이다 유산소운동이다 해서 건강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하지만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온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노동환경과 사회환경이 건강하지 못하면, 혼자서 아무리 좋은 것 찾아 먹고, 걷고 뛰고, 마음수련을 한들 그리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에 뜨는 무수한 자극적인 기사제목들을 클릭하지만 부러 안보게 되는 뉴스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느 공사장에서 인부가 떨어져 숨졌다, 작업 중 화재로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사망했다는 등의 재해기사다. ‘또 어떤 집의 가장이, 어떤 집의 귀한 자식이 사고를 당했을까?’ 안 봐도 구구절절할 사연이기에 애써 외면하게 된다. 내 맘 아프고 상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번에도 외면했던 기사가 용광로에 떨어져 한 청년이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제목만 보고 “아휴...또”하고 외면했다. 그런 외면은 며칠가지 못해 덜컥 걸렸다. 죽은 청년을 애도하는 어떤 이의 시가 간곡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이미 읽어보았겠지만, 혹시 몰라 한번 더 인용해본다.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이 시를 읽고난 후 외면했던 기사를 찾아 읽어보니, 이름도 없이 김 아무개씨인 29세 청년이 새벽 2시에 일하다 뜨거운 용광로에 빠져죽었다는 냉정한 단신기사였다. ‘왜’,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어떤 책임을 누가 소홀히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위 사진:9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환영철강 용광로에서 숨진 청년 노동자를 애도하고 있다.


기사를 찾아 읽다보니 절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을 한국 사회에 가져다준 고 문송면이다. 1988년 사망 당시 15살이었다. 그의 추모비에는 송경동 시인의 시가 담겨있다.

1987년
열 넷 가난한 농꾼의 아들로
서울 공장에 팔려와
당신 몸에 심어진 것은
소년노동 철폐와 산재추방의 꿈이었다.
열다섯 당신은 죽지 않았다.
당신은 수은보다 더 오래
이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오늘도 평등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순박한 거처가 되고 있다.
우리의 출발이며
우리의 끝일 당신과 함께
우리는 오늘도 바라나니
해밝고 강인한 꿈들이여 부활하라. (송경동 문송면 20주기에 추모비에 쓴 시)

15살의 문송면이 왜 죽었고 책임자들은 어찌 처신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1988년 당시에 나온 대한변협 인권보고서를 옮겨본다.

“협성기공은 온도계 및 압력계를 만드는 회사로서 생산직 노동자들은 주로 지방출신 15, 16세의 야간부 학생들이다. 문송면군은 1987년 12월경부터 협상기공에서 신나를 사용하여 압력계 카바를 닦는 작업과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였다. 작업환경은 공간이 너무 좁고 환기시설이 거의 되어 있지 않았으며, 수은주입시 수은은 증기로 새어나오고 일부는 액체상태로 바닥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이 사업장은 노동부에서 작업환경을 개선하라는 행정명령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송면군은 1988년 1월 말부터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하였으나 병명을 알 수 없었다. 3월 9일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실시한 결과 3월 24일 수은중독 및 유기용제 중독으로 진단되었다. 이에 가족들은 산재처리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산재요양신청서 중 회사서명란에 날인을 받기 위해 회사에 찾아갔다. 그러나 가족의 몇차례 방문과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서 그랬다는 증명을 대라”, “법대로 할테면 해봐라”는 등의 말을 해대며 날인을 거부했다.
...노동부에서는 진정서만 접수시키고 산재요양신청서는 ... 반려시켰다. ...문송면군은 6월 29일 여의도 성모병원 직업병과로 옮겼으나, 7월 2일 결국 사망했다. 가족들은 “노동부와 회사측이 송면이를 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1988년 문송면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은 2010년 용광로 청년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1988년의 슬픔은 한국에서 산재추방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2010년의 슬픔은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애도 속에서 기억하고, 타인의 존재가 내속에 들어와 있기에 슬픔을 느끼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 속에 인권실천의 출발점이 있을 테니 말이다. 노동자의 죽음 또는 심각한 부상과 질병, 기업의 발뺌, 정부의 무대응의 고리를 깨기 위해 기억과 애도는 꺼뜨리지 말아야 할 불씨일 것이다.

세계의 노동단체들이 보고하는 최신 정보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해마다 36만건의 치명적인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약 2백만건의 치명적인 직업병이 발생한다. 하루하루, 96만 여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다치고 직업병으로 평균 5,330명의 노동자가 매일 사망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는 ‘산재노동자를 기억하는 날’을 두고 있다. 기억과 애도의 촛불을 밝히고 현황과 대책을 점검하기 위함이다. 이런 선례를 따라 1996년부터 유엔에서도 산재노동자의 날(매년 4월 28일)을 기념하고 있다. 단지 기념일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걸 계기로 산재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건강을 해치는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산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산업안전과 건강에 대한 변화와 진전을 일궈내자는 의미에서다.

‘산재노동자를 기억하는 날’에 대한 홍보물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현행 생산 체제가 조직되는 방식은 흔히 노동자들이 고도의 생산성에 대한 압력을 가한다. 그런데 보호는 약하고 직업안정성은 취약한 가운데서 이런 압력을 받기 때문에 생명과 안전을 임금 때문에 무릅써야 한다. 그래서 산재를 ‘안 보이는 문제’로부터 ‘보이는 문제’로 만드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고, 산재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닌 집단적 해결로 다뤄야 한다. 즉 노동조건에 의해 야기된 건강 문제로 논의해야지,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드는 문제를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사람을 해치는 것은 모두를 해친다”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런 홍보물들이 하나같이 인용하고 있는 것에 ‘서울’의 이름이 보였다. ‘서울’이 왜 여기에 등장할까 하여 찾아보니, 바로 오늘 읽어볼 ‘산언안전보건 서울선언’때문이었다. 이것은 2008년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KOSHA)이 서울에서 개최한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결의한 선언이다. 당시 언론들은 ‘안전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다고 치장했고, 안전보건에 관한 최초의 국제헌장이라고 서울선언을 홍보했다. 기업인단체 등 각종 경제단체 등이 이 선언을 홈페이지에 퍼나르고 있었다. 그 후 선언의 채택을 기념하기도 했고, 후속회의가 열려 서울선언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도 했다.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이라는 이 선언을 그냥 지킬 것 같지는 않기에, 산업안전보건 마저도 생산성의 이름으로 싸안아 버릴지 모르기에, 우리에겐 더 많은 애도와 기억과 실천 노력이 요구되는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 서울선언(Seoul Declaration on Safety and Health at Work, 2008)

안전보건대표자회의

2008년 6월 29일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한국산업안전공단(KOSHA)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제18회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를 계기로 고위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사업주 및 노동자 대표, 사회보장기구 대표, 정책 결정자 및 정부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안전보건대표자 회의에서 전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인식하였다.

전세계에서 직업과 관련된 재해와 질병으로 연간 230만여명이 사망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세계 총 생산의 4%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산업안전보건을 개선하면 작업조건, 생산성,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며, 세계화는 반드시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보장하기 위한 예방대책과 같이 진행된다.
...

산업안전보건 증진, 산업재해와 직업병 예방은 국제노동기구(ILO) 설립목적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계획(Decent Work Agenda)에서 가장 중요하다. 산업재해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노동자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 ISSA의 사명이며, 적극적 사회보장의 개념적 체제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산업안전보건을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사회 각 주체의 책임이며, 모든 사회구성원은 산업안전보건이 국가 계획에 우선 반영되도록 하고, 안전보건 예방문화를 형성하고 유지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한다.

2. 국가의 안전보건 예방문화는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모든 수준에서 존중하는 것이며, 정부, 사업주, 노동자는 명확한 권리,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확보하는데 적극 동참하며, 예방의 원칙을 최우선시하는 문화를 조성한다.

3. 국제노동기구(ILO) 산업안전보건협약(1981년) 제155호 제2절의 규정을 감안하여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등 산업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체계적인 접근방법으로 산업안전보건의 개선을 장려한다.

4. 정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국제노동기구(ILO) 산업안전보건 증진체제에 관한 협약(2006년) 제 187호와 산업안전보건 관련 협약을 우선 비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해당 협약을 이행하여 국가의 산업안전보건 수행성과를 체계적으로 증진토록 한다.
* 국가 안전보건 예방문화를 조성하고 향상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 강력하고 효과적인 근로감독제도 등 적절한 안전보건 기준을 집행함으로써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을 보장한다.

5. 사업주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높은 수준의 산업안전보건 기준은 기업의 우수한 사업실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경영활동에 재해예방을 통합하여 운영한다.
* 사업장 안전보건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산업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구축한다.
* 노동자 및 노동자 대표에게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되는 모든 조치에 대하여 조언, 훈련, 정보를 제공하고, 노동자 및 노동자 대표가 이에 참여하도록 한다.

6.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함에 있어, 안전보건과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조언을 받는다.
* 개인보호구 사용 등 안전보건 수칙과 절차를 준수한다.
*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고 안전보건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대책에 대하여 사업주와 협력한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19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16일 0: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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