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살 구역] 내가 왜 말을 안 하는 지 알아?

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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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만나게 된 3학년 현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지를 알게 되기 전,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전해 들었었다. 공부방 안에서 말을 하지 않아 모두의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만난 첫 날, 조금 긴장했다. 책언니는 이야기를 하는 활동이 많은데 말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 우선 현지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부각시키지 않으며, 말을 계속 걸어봤다. 처음엔 씩 웃기만 하던 현지가 5분 뒤엔 입모양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10분 뒤엔 귓속말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곧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큰소리로 소리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대체 누가 얘가 말을 안한대! 정말 평소에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우리가 본 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제일 많았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현지가 선택적 함묵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선택적, 함묵증. 선택적으로 말을 하지 않음. 의아했다.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인걸까? 현지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그 후로도 현지는 방문을 닫고 책언니를 시작하면 언제나와 같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방의 다른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는 귓속말을 하거나 말을 하지 않고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더 많았다.

현지가 내민 손

현지가 왜 말을 하지 않는 지 알게 된 건 만난지 네 번째 되던 날이었다. 피노키오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는 시간, 현지는 만화에 집중하는 대신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다 갑자기 나에게 비밀이라며 귓속말을 시작한다. 씩 웃는 현지가 내 귀를 간지럽히며 들려준 긴 이야기를 줄여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왜 말을 안 하는지 알아? 사실 내가 1학년이 됐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안했어. 그런데 계속 말을 안하다보니까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야. 너무 어색해서. 사실 나도 말을 하고 싶다? 왜냐면 내가 애들한테 말을 안하니까 애들이랑 같이 놀 수가 없는 거야. 같이 놀려면 말을 해야 하잖아! 그래서 2학년 때부터 돌봄교실(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단말야. 그런데 3학년이 됐잖아. 그랬더니 돌봄교실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또 말을 못 하게 되버렸어.”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현지가 밑도끝도 없이 내 귀를 붙들고 자기가 말하지 않는 이유를 들려준 이 상황이 뭔가 싶었다. 대체 엠건과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자신이 간직해 온, 모두가 그렇게 알고 싶어하던 그 비밀을 만난 지 네 번 된 우리에게 들려준 걸까. 현지는 그 동안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나보다.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점점 갇혀버리는 자신을 누군가 도와주길 얼마나 바랬을까. 현지 주변의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현지가 편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현지는 함께 놀고 싶어하는 사람인 걸 알기나 할까. 그렇게 도와주는 것보다는 말 좀 하라는 윽박을 훨씬 많이 들었을 현지는 세상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미 현지의 주변에는 말 할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지가 맘 편히 말할 수 있는 곳이 되어주는 것 뿐이었다. 평소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가족 구성원은 5살먹은 동생이 전부였고, 가족들이 집에서 각자 핸드폰이나 티비를 보는 것으로 추측됐다. 학교에서의 이야기는 잘 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또래보다 몸집도 작고, 말도 안하는 현지에게 친절한 환경은 아닐 거라는 것이다.

함께 책언니를 하는 동갑내기 남자아이 은성이와 2학년인 슬기는 종종 현지를 구박했다. 답답해하고, 무시했다. 니가 그렇게 말을 안하니까 애들이 너랑 안노는 거라는 둥, 저 언니는 학교에서 말 한마디도 안한다며 무시하는 말을 들었을 때 현지의 표정은 부끄러움과 분노, 악에 받친 눈을 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화가 난 현지는 둘에게 덤비곤 했다. 하지만 한 대를 때리고 나면 머리도 좋고, 또래보다 빠른 은성이나 슬기에게 세 대쯤 맞았다. 그 상황에 책언니들은 다른 애들에게 하지 말라고 달려와 있고, 현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러움과 분노에 차서 책언니를 때리기 시작한다. 있는 힘껏 자신이 받은 상처를 토해내듯 우리에게 손발을 휘두르곤 했다. 폭력은 아래로 내려간다. 다른 애들은 받은 상처를 약한 현지에게, 현지는 자신을 받아줄 우리에게로 분출한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닌 우리는 맞으며, 안으며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1년 쯤 만나며 깨달은 건 현지에게 남들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말을 안 해버릇해서인지 유아적인 어눌한 발음의 말을 오래 귀기울여 들어야했고, 복잡한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에 더 많은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다. 현지가 흥미를 잃는 순간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놓쳐버렸을 때였다. 말하지 못한 시간이 긴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런 점들을 알게되며 지내던 어느 날, 개인적으로는 우리 현지가 달라졌어요! 같은 소중하고 고마운 변화를 보았다.

사실 현지는 그냥 내 무릎에 앉아있을 뿐인데 꼬리뼈에 힘을 주고 허벅지에 앉아 손으로 다른 허벅지를 짚는다던지… 우리를 고통에 빠트리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아프다고 말하며 무릎에 앉아있는 현지를 살짝 들어서 자세를 옮길라치면 현지는 화를 내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화를 내거나 자기를 혼내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만난지 반년쯤 지나 다함께 근처에 있는 (우리가 다른 책언니를 하는)작은 도서관으로 소풍을 갔던 날, 현지가 책을 읽어달라며 골라서 내 무릎에 앉았다. 둘이 한참 책을 펼쳐놓고 딴 소리를 하며 웃고 떠드는데 현지가 몸을 비틀다 내가 고통스러운 자세가 되어버렸다. 여느 때와 같이 “현지야, 나 아파ㅠㅠ”하고 나의 의사를 전달하자 현지가 약간 미안해하는 눈으로 웃으며 자세를 바꾸며 나에게 말한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모두의 관계

알았어. 이 한 마디가 뭐 별 거냐고?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우리의 관계가 적어도 위압적이거나 두렵고 불안한 관계가 아니게 되었다는 가장 큰 신호였다. 문제가 생기는 순간 온 몸에 날을 세우는 게 아니라 나의 의견을 의견으로 받아들여주는 그 것. 그렇게 나와 현지가 지지고볶고, 싸우고, 웃고 떠들며 지냈던 그 날들이 조금은 우리의 관계에도 현지의 경계에도 영향을 줬다는 게 놀라웠다. 우리와 읽었던 책을 한 권도 기억하지 못 한다 해도 우리가 책언니를 하는 이유는 이걸로 충분했다. 현지와 우리의 관계가 달라진 것도 너무나 고마웠지만, 최근 몇 주간 다른 애들과 현지의 관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지를 대 놓고 싫어하던 은성이가 답답해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제발 학교에서도 말 좀 그렇게 해라!” 그 전까지 무시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 다른 눈빛이었다. 여전히 학교에서 은성이가 현지를 살뜰히 챙겨줄 리는 없지만, 돌아오는 길 우리는 너무 기뻤다. 더 많이, 더 오래 만나면 언젠가 누군가 현지를 괴롭힌다면, 은성이나 슬기가 같이 괴롭히는 게 아니라 편을 들어줄지도 몰라.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건 우리 모두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었을 거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라는 듯 도도하게 ‘척’하던 은성이가 무릎을 베고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고, 잘 보이려고만 애쓰던 슬기가 딴짓을 하며 만화책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책언니 시간동안 서로에게 날을 세울 필요가 줄어든 것 아니었을까.

이 관계가 변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서로에게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언니의 시간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 그게 1년이었다. 이제부터 해야할 게 너무나 많은데 어쩌면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이 시간동안 겨우 쌓아온 것들은 금새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더 많길 바란다. 더 오래 만날 수만 있다면, 또 달라진 관계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테니까.
덧붙이는 글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18 호 [기사입력] 2014년 12월 06일 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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