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헌읽기] “디거스(Diggers)의 노래; 뒤엎어진 세상”

17세기 영국 '땅 파는 사람들'의 수난과 이상을 노래하다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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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4일, 판교 ‘로또’가 발표돼 들썩거리던 날, 평택 대추리에서는 평생 살아온 자기 땅에서 늙은 농민들을 내쫓으려는 군경 합동 작전이 벌어졌다. 법률도 정치가도 군인도 경찰도 이 늙은 농민들에게 땅을 파서 먹고 산 것이 죄라고 윽박지르며 폭력으로 짓밟았다. 현장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국가인권위의 직원들이나 기자들은 ‘인권은 없다’라는 탄식을 주워 담기라도 했을까? 땅 파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우려내며 경찰과 군대, 용역깡패들로 중무장한 국가권력이 인권을 패대기친 5월,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라던 광주의 노래가 소스라치게 기억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노래 가사이다. “디거스의 노래”를 통해 17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과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17세기의 디거스가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17세기에 있었던 디거스의 주장을 녹여내어 20세기의 영국 민요가수 레옹 로젤슨이 만든 노래가사이다. 로젤슨은 디거스의 지도자였던 윈스턴리가 팜플렛에 남긴 말들을 녹이고 전해 내려오는 구절들을 모아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디거스의 주장이 담긴 팜플렛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이 노래 가사에 함축된 그들의 주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사진:<그림 출처 http://www.online-web-comics-galumph.com>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지주들

디거스(Diggers)는 직역하면 ‘땅 파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1649년에서 1650년, 잉글랜드의 성조지라 불리는 작은 언덕에 농사를 지으러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의 수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분명 행색은 초라했겠지만 그들이 품은 이상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땅을 갈고 씨 뿌릴 준비를 하며 디거스는 대토지소유에 반대하고 재산공유제를 요구했다. 1649년은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처형된 해였다. 이때 디거스는 영국의 시민전쟁이란 왕과 대토지소유자들에 맞서 싸웠던 것이니 왕이 처형된 마당인 지금, 토지는 마땅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디거스의 활동은 공화정 정부를 놀라게 했고 지역 지주들의 반감을 북돋았다. 법적인 탄압은 물론이고 고용된 패거리(요즘말로 용역이라 할 것이다)와 군대까지 나서 아이나 어른에게나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불사르고 경작물을 파괴했다. 모욕당하고, 체포되고, 감금당하는 속에서 디거스는 결국 1650년 3월 말경 폭력으로 해산됐다. 디거스가 황무지를 일구어 만든 땅에 자기 가축을 몰아넣고 폭도들을 동원해 집을 부수고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사람은 지주이자 성직자였다. 1650년 4월 1일, 윈스턴리와 14명의 디거스는 불법 집회, 침입, 공안방해를 이유로 기소됐다. 기소의 결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디거스의 작은 실험의 끝이었다. 그러나 과연 끝이었을까?


땅을 갖는 사람들, 땅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공산주의적 농경사회를 꿈꾸었던 디거스의 이상은 그 지도자였던 제라드 윈스턴리가 썼던 팜플렛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선언’(1649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땅의 모든 소산은 적과 동지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공통 생계를 위해 창조되었다.”
“애초 토지 소유는 전쟁으로 얻어진 것이고 토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인류의 한편이 다른 한편에 대해 살인과 절도를 하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인하고 훔치는 무력의 힘이 정부를 세웠고 그 정부를 지탱하고 있다.”

디거스와 윈스턴리의 주장을 계속 들어보자.

“함께 일하라, 함께 빵을 먹어라.”
“내 것이고 네 것이라 하는 이 특별한 재산은 인민에게 모든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재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훔치게 만들었고, 둘째 훔친 사람들을 처형하는 법을 만들었다. 재산은 사람들에게 악마의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고 나서는 그런 일을 했다고 사람들을 죽인다.” - [새로운 정의의 법, 1648년]

“진정한 종교와 순수함은 이것이다. 정복자들의 힘으로 보통 사람들에게서 빼앗아간 땅을 되돌려놓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왕권이 법을 세우고 정부의 통치가 이를 지킨다. 정의인 척 하고 있지만 법이란 억압하는 무력을 온 힘으로 지탱하는 것이고 그 자식인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는 울타리를 쳐서 토지를 갖게 하고 누구는 토지 밖으로 내몬다. 일부 사람에게는 토지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부인한다. 이는 정의의 법에 반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대개의 법률은 빈민을 부자의 노예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억압을 유지하는 것이고 재산의 엄중한 수호자인 것이다.” - [의회와 군대를 위한 새해선물, 1650년]

“그 누구도 부자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나 또는 그를 돕는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인해서 부유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이웃에게서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한다면 결코 일 년에 수백 수천의 재산을 모을 수 없다. 타인이 그가 일하도록 도왔다면 그 재산은 그 사람의 것일 뿐 아니라 그 이웃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노동뿐만이 아닌 타인들의 노동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부자들은 편하게 살고, 타인의 노동으로 먹고 입는다. 이는 그들의 수치이지 고결함이 아니다.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더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노동한 사람들의 수고로부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이고, 부자들이 주는 것이란 자기의 노동이 아닌 타인의 노동을 양보하는 것이다.” - [자유의 법, 1652년]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일단 지주인 자는 출세하여 판사, 지배자, 장관이 된다.” - [진정한 수평파의 진보된 기준, 1649년]

이렇듯 디거스는 사유재산, 특히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 소유를 “모든 전쟁, 유혈, 도둑질과 인민을 비참하게 만들고 노예화시키는 법률의 원인”으로 보았다.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을 초석으로 만들어진 승리자(부자)들의 인권선언들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민중의 인권선언들에서는 한결같이 발견되는 점이다. 부자들의 인권선언이 입으로만 만인의 평등을 외치며 재산권에 따른 권리의 불평등을 법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과는 다르다.


‘땅의 사유’ 부정, 평화주의로 연결돼

사유재산의 부정은 평화주의로 직결된다. 윈스턴리는 “전쟁이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며 권력의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꿰뚫어 보았다.

디거스의 사유재산 없애기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받는 숱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디거스 자신들은 폭력 사용을 거부했다. 디거스는 공유지와 황무지를 경작하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영국의 모든 빈민들이 자신들의 실험을 따를 것이라 믿었다. 자신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면 전 영국 사회에 스며들 것이고 전 유럽도 그러할 것이고, 결국에는 부자들과 권력자들도 자신들에게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폭력이 아닌 자신들의 ‘실험’과 ‘보기’로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너무 순진하다고, 경제사회적 조건이 그런 요구에 귀 기울일 단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거스의 이상과 실험은 오랜 세월 겉만 번지르르한 인권선언에 도전해온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면면히 이어져온 생각이며 팔과 다리로 옮겨졌던 실천이지 않았던가.

17세기의 디거스가 받았던 수난을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이 여전히 당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자유 무역으로 수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세계 최고의 전쟁광 미국의 전초기지를 마련해주려고 땅 파는 사람들을 땅에서 내모는 폭력이 오늘 평택에서 계속되고 있다. 17세기의 디거스가 품었던 믿음대로 우리가 ‘합류’해주는 일이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살릴 길일 것이다.

디거스의 노래; 뒤엎어진 세상

1649년
성 조지 언덕에
디거스(the Diggers)라 하는 남루한 집단이
인민의 의지를 보이려 등장했다
디거스는 지주에게 도전했다
디거스는 법에 도전했다
디거스는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
자신들의 것이었던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우리는 평화로 왔다, 말하기를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려고
우리는 공동의 땅에 일하러 왔다
또 황무지를 경작하려 왔다
이 나뉘어진 땅을
우리는 완전한 전체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도록

재산이라는 죄악을
우리는 경멸한다
사적으로 갖기 위해 땅을
사고 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둑질과 살인으로
그들은 땅을 취했다
그들의 명령에 이제 사방에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들은 법을 만든다
우리를 꽁꽁 묶어두려고
성직자들은 천국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한다
우리는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는
부자들을 배불리는 탐욕의 신에게는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일한다, 우리는 함께 먹는다
우리에겐 어떤 무기도 필요없다
우리는 주인들에게 절하지 않겠다
지주들에게 지대를 지불하지도 않겠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디거스는 영광을 위해 모두 일어섰다

이제 일어서라
재산가들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이 용역과 군대를 보냈다
디거스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하여
디거스의 오두막을 무너뜨리려고
디거스의 곡식을 파괴하려고
그들은 흩어졌고 오직 비전만이 남아있다

너희 가난한 이들은 용기를 가져라
너희 부자들은 조심해라
땅은 공통의 보고로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물은 공유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이다
우리는 평화로 왔다
그들을 해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인권오름 제 3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0일 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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