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헌읽기] “자기방어를 방어하며”

- 휴이 뉴튼(Huey P. Newton),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 (1967.6.20)

류은숙
print
바람이 분다. 광풍(狂風)이 분다. 수시로 불었던 광풍이지만 온몸으로 바람막이에 나선 사람들의 몸과 가슴에는 피멍이 든다. 경찰에 의한 노동자·농민의 죽음, 떨어지는 농산물 가격, 천정을 모르는 집값 놀음, 세금폭탄 타령, 그래도 밀어붙인다는 한미 FTA, 이라크파병연장……. 더 이상 늘어놓기도 민망할 정도의 인권말살정책이 판을 치는데 가만있으라 한다. 따지려 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정작 ‘폭력’을 창조한 세력들, 생명을 죽이고 생존의 희망을 죽인 세력들, 얘기를 들으려고도 전달하려고도 않은 정치인들과 언론이 외치는 ‘평화’는 역겹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자기 방어를 방어하며”이다. 오늘날 언론이 시위대를 끔찍하게 몰아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주의자, 전복세력, 선동분자, 빨갱이’로 불린 사람들이 쓴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민권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든 법원이든 그 누구도 폭력과 불의로부터 사회적 약자인 흑인들을 보호할 의사가 없다는 증거가 쌓여만 갔다. 흑인 빈민가에서 터져 나온 전국적인 투쟁은 ‘반란, 폭동, 소요’로 표현됐고 경찰과 주방위군 뿐만 아니라 백인 민간인들도 총기를 사용했다. 소년·소녀, 임산부도 그런 총탄에 희생됐다.

위 사진:사형폐지운동을 비롯한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무미아 아부 자말 <출처; www.ecn.org>
이 문건 속에 ‘총’이 등장하는 것이 그리 놀랄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흑표범당은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흑인좌파정당이었다. 우리에게는 사건 조작으로 사형수가 된 무미아 아부 자말(레게머리를 한 그의 사진은 사형폐지운동을 비롯한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어왔다)로 인해 알려진 조직이다. ‘우리를 대표하는 정부가 없으니 우리 스스로 정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흑표범당에 참여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흑표범당의 당원들은 흑인들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고 말하며 총을 소지하고 다녔다. 경찰의 총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그들은 총을 가지고 흑인빈민가를 순찰했다. 동시에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아침식사, 학교, 병원 등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가 이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은 치밀하고 가공할 공작으로 흑표범당을 파괴했다. 1969년 어느 날 새벽에는 흑표범당 당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기관단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한 경찰분대가 습격하여 흑표범당의 지도자들을 살해했다. 흑표범당은 1980년대 초까지 존속했다고 하나 상당수 당원을 구속과 사망으로 잃은 이후 당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다.

위 사진:흑표범당은 불의한 권력과 차별에 맞선 '무장' 저항을 공개적으로 추구했다.<출처; www.jerryjazzmusician.com>
물론 이들의 ‘자기방어’ 주장을 흑인이나 변화를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찬동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염병과 소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비폭력 행동을 통해서만 의미 있는 사회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호소가 더 강력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비폭력 행동을 찬양하는 언론들이 고의로 빼먹은 중요한 부분이 있다. 킹 목사의 비폭력 행동은 그의 분명한 실천을 통해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킹은 분노하고 절망한 흑인들에 대한 비폭력의 호소가 가장 큰 폭력의 가해자인 자기 정부를 향해 말하지 않고서는 허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탐욕을 베트남 전쟁이라는 가장 큰 폭력을 통해 채우려는 미국정부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그 전쟁으로 인해 가난한 흑인이 굶어죽고 또한 전쟁에 나가 죽어야 한다는 현실을 고발하지 않고서는 비폭력에 대한 자신의 호소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그렇게 했다. 그 결과 그는 암살당했다.

이라크 파병이라는 크나큰 폭력, 생존권 박탈이라는 근원적 폭력을 말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호소하는 소리는 겨울철의 모기 소리마냥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하물며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작정한 듯 난도질하는 것을 보니 예비된 공작의 수순으로 여겨질 뿐이다. 해놓은 것도 잘한 것도 없는 정권의 최후 발악을 보는 듯하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왜 기본적 인권이겠는가? 이것이 없는 표현의 자유는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 재산가들이 독점하는 여론이 돼버리고, 정작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문제를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제는 집회·시위의 자유, 그것만이 아니다. 자기방어는 사활적인 인권이다. 지금 거리의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자기방어를 위해 싸우고 있다. 한 줄이라도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쓰고 나서야 ‘평화’를 입에 물 수 있지 않을까?

“자기방어를 방어하며”
- 휴이 뉴튼(Huey P. Newton)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 (1967.6.20)

법과 규범은 언제나 민중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 규범이란 민중에 의해 세워져야 조화로운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법률과 규범은 사회의 보편적 복지를 증진할 목적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규범이 인간을 섬겨야지, 인간이 규범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당국자들이 가난한 민중을 괴롭히려고 시도한 법률과 규범은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에 관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섬기지 않는 규범을 민중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외면한다. 자신들의 더 나은 이익을 위한 규범과 법률을 만들고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의무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기본적 인권 중 하나이다.

착취하는 억압자들의 속임수와 기만적인 올가미로 만들어진 경로를 민중은 거부해야 한다. 민중은 억압자들이 지지하는 모든 것에 반대해야 하고, 억압자들이 반대하는 모든 것을 지지해야 한다.

억압자는 심판받을 때까지 시달려야 한다. 억압자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어떤 평화도 없다. 노예들의 수는 언제나 노예주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억압자의 권력은 민중의 굴복에 달려있다. 흑인들이 정말로 단합해서 자신들의 엄청난 수로 일어설 때, 불의를 때려 부술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엄청난 수가 가진 힘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대륙과 서반구 도처에 있는 무수한 흑인 민중이다.

위 사진:억압당하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가 힘을 모아 다함께 일어설 때 사회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흑표범당과 함께 일어선 다수의 흑인들<출처; www.bobbyseale.com>

인종차별주의 머저리인 억압자는 무장한 인민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무기와 자기방어를 위한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흑인들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 비무장한 민중은 노예이거나, 어느 때건 노예제의 대상이 된다. … 자유, 방어의 총, 그리고 전략적 해방론으로 무장한 흑인민중과 비무장으로 굴복하는 흑인 민중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고장난 차 엔진을 고치고 싶은 정비사는 그 일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를 가져야만 한다. 민중이 해방을 향해 나아갈 때도 해방의 기본적 도구를 가져야 한다. 총을 가져야한다. 총의 힘으로만 흑인 대중은 무장한 인종주의자들의 권력 구조가 자신들에게 자행하는 테러와 만행을 멈출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오직 총의 힘으로만 전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
인권오름 제 31 호 [기사입력] 2006년 11월 28일 23:15:08
뒤로
위로